에디터 에세이

비정기적으로 에디터의 나날을 기록합니다.


말은 안 통하지만

그이와 나는 어느 길거리 상점에서 만났다.

문 안에서 또렷히 누군가를 바라보는 눈빛에 끌려 스쳐지나가다 나는 그만 그에게 말을 걸고 말았다. 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갸우뚱거리는 눈빛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메뉴는 스파게티였다. 새우 알리오올리오를 먹는데 새우 속에서 뾰로롱 하고 그이의 얼굴이 올라왔다. 밥 정리를 하고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는데 천장에서 그이의 그림자가 뾰로롱 하고 내 곁을 스쳐지나 갔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다음 날 다시 그 상점을 찾았다. 유리문 뒤에 그이는 여전히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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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고양이는 현재 19살이다. 22살 때쯤 처음 만나 분가하기 전까지 함께했다. 그녀의 이름은 꼬맹이로 이름과 다르게 우람한 덩치 덕분에 사람들은 내가 “꼬맹이야”라고 소개하면 반사적으로 “호랑이가 아니고?”라고 말했다. 사실 그녀의 얼굴은 호랑이를 쏙 빼닮았다. 세상에 못생긴 고양이가 어디 있겠냐만은 어딘가 산적을 떠오르게 하는 날카로운 눈매와 삼색 털은 첫인상에서 호감 점수를 매기기에는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외모와 달리 그녀는 가족들과 사이가 좋았다. 꼬맹이는 제법 사람 친화적이었고 제법 사람 말을 잘 알아들었다. “올라가” 하면 소파에 올라왔고 “내려와” 하면 소파에서 내려갔다. 심심하면 서랍을 뒤져 자신의 장난감을 꺼내서 놀고, 미닫이 문을 열어놓고 닫지 않아 가끔 잔소리를 듣는 아이었다. 말은 안 통해도 통하는 것 같은 느낌. 말이 아닌 무언가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은 우리끼리 더 깊은 교감과 결집을 만들어냈다. 꼬맹이와 만나면서 나는 역시 사랑은 외모가 아니라 소통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의 첫 번째 고양이처럼 고양이는 모두 사람 말귀를 잘 알아듣는 생명체라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무심코 데려온 그이. 일단 그이의 이름을 망고라고 지어주었다. 노란색 털이 윤기 나고 눈이 동그라니 달콤한 과일 이름과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세상을 만난 지 6개월이 되었던 그이는 비교적 어린 나이었지만 그렇다고 비교적 새끼라고 하기엔 덩치가 컸다. 그이에게 이름을 알려주고 하우스 메이트로서 잘 지내볼 것을 혼자 다짐했다.(물론 그이에게 나의 다짐도 끊임없이 얘기해주었다.) 


하지만 그이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름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이는 겁이 많고 작은 것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본인의 신변 보호와 맛있는 닭가슴살 큐빅이다. 시간이 지나도 어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을까 가끔 생각하지만 역시 그이의 노란 털은 마음을 감싸주는 무언가의 능력이 있다.


오늘 아침 문을 열었다. 창밖에서 시원한 가을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기분 좋게 머리가 날리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그이도 창틀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었다. 말은 안 통하지만 창밖 너머를 같이 바라보고 있는 기분.

함께 바람을 맞고 있는 기분.

난 망고를 키우면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말이 아닌 무언가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은 더 깊은 교감과 결집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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